도쿠시마현 서부 지역 중에서도 서쪽 끝, 깊은 산 속에 ‘이야(祖谷)'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야는 일본 3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온천 지역이기도 하며, 도시 속의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도쿠시마현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그런 이야에는 이야 계곡의 산을 잇는 유명한 현수교가 있습니다.
은근히 무서운(!?) 흔들흔들 가즈라바시 다리
이 현수교는 '가즈라바시(덩굴다리)'라 하며, 이야 계곡 수면에서 14m 위에 걸쳐져 있습니다. 국가 중요유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가즈라바시는 폭 2m에 전체 길이가 45m로 꽤 길며, 흔들거리기 때문에 건널 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체를 찍은 사진을 보면 그 흔들림이 전해오는 듯할 것입니다.
현수교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양 끝만 고정되어 있어 지금이라도 흔들릴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다래나무로 만들어진 이 현수교는 낮에 가면 실제로 건널 수 있습니다. 발판 부분도 나무 간격이 넓어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그 흔들림이 스릴을 더해줍니다! 주위에는 멋진 비경이 펼쳐져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만, 사실 이 가즈라바시에는 어떤 전설이 숨겨져 있습니다.
가즈라바시에 숨겨진 헤이케 가문의 전설...!
가즈라바시의 재료로 사용된 나무는 ‘다래나무'라고 하는 개다래나무과에 속하는 덩굴성 식물이며, 다른 식물에 비해 튼튼합니다. 하지만, 가즈라바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리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정도의 강도는 아니어서 목재 등에 비해 다리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다래나무로 다리를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야에 숨겨진 헤이케 가문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 전설의 기원은 1185년, 겐지와 헤이케 가문이 충돌했던 ‘야시마 전투’에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한 다이라노쿠니모리(平国盛)가 이야의 산골짜기로 도망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것이 지금도 이야에 남아 있는 헤이케 가문의 전설이며, 그 전설의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가즈라바시입니다.
전투에서 패배한 헤이케 가문의 수장 다이라노쿠니모리는 겐지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에도 겐지 진영이 쳐들어올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격자들이 들이닥쳤을 때 계곡에 놓아진 다리를 쉽게 잘라낼 수 있도록 일부러 다래나무로 다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즈라바시 바로 근처에는 헤이케 진영의 패잔병들이 비파를 연주하며 서로를 위로하던 장소라 전해지는 ‘비와노타키(비파 폭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헤이케 가문의 의지가 깃든 파워 스폿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기 때문에 믿을지 말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달려 있겠지만, 일본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중 가즈라바시를 향해 더 깊은 비경 속으로…!
원래 이야에는 13개의 가즈라바시가 존재했는데, 지금은 3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앞서 헤이케 가문의 전설과 함께 소개해 드린 다리인데, 근처에 호텔이나 음식점이 있는 등 싫든 좋든 어느 정도 관광지화된 곳입니다. 나머지 두 개는 이야에서 더 멀리 떨어진 '오쿠이야'라 불리는 지역에 있습니다. 비경 중의 비경이라 할 수 있는 오쿠이야에 '이중 가즈라바시'라는 두 개로 늘어선 다리가 있습니다. 이곳은 그야말로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둘러싸여 있어 경치의 아름다움으로만 보면 첫 번째 가즈라바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다리를 못 보는 한이 있어도 이중 가즈라바시는 꼭 봤으면 할 정도로 추천드리는 절경 명소입니다. 주변에 캠핑장도 있으니 피서를 겸해 여름에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올여름 휴가는 헤이케 가문의 전설을 찾아 이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